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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열이라는 이름이 잊혀져도
주장/정치와 경제 |
2008/06/11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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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0일이다. 사람들이 이한열 영정과 함께 오후 6시 30분에 연대에서 출발해 시청으로 행진한다는 기사를 확인했다. 신촌에서 칼국수로 배를 채운 뒤 연대로 향한다.
6시. 신촌에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발걸음이 무겁다. 한쪽 구석에 6월 10일에는 철시한다는 종이가 붙어 있지만, 문 닫은 가게는 찾아볼 수 없다. 언제나 붐비는 학교 앞 건널목에 와서 한숨을 쉰다. 정말이지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평화롭게 웃으며 신촌으로 나온다. 둥이가 그런다. "연대 애들, 실망이야." 할 말 없다. 그래도 한 마디 했다. "나도 그랬어."
교문 안쪽 길바닥에는 촛불집회 행사장 가는 길을 알려주는 나일론 끈이 붙어있다. 우르르 몰려 나오는 학생들과 반대로 우리는 학교로 걸어들어간다. 파도를 헤쳐 나가는 기분이다. 그래도 하얀 나일론 끈은 선명하다.
행사는 진행되고 있었다. 학생회관 앞에서 그리 많지 않은 사람들이 모여 있다. 엄숙한 이 곳. 여기가 이한열의 영정이 출발하는 곳이다.
기자들과 카메라맨들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그 사이로 TV에서 많이 봤던 사람의 얼굴이 보인다. 백기완 씨다. 사람들 틈을 비집고 들어가 보니 유족들과 함께 앞자리에 앉아 있다.
이한열이라는 이름은 여전히 민주화의 상징이다. 그런데, 그 상징적인 의미는 점점 사라지는 것 같다. 언론매체들의 취재 열기가 대단했지만, 정작 모임에 참여하는 이들은 적었다. 힘이 빠진다.
이한열의 이름이 곧 사라질 것 같다는 생각이 스친다. 그의 얼굴은 영정 사진 속에, 중앙도서관의 대형 걸개 그림 속에, 학생들이 준비한 커다란 천에 단단히 박혀 있지만, 언젠가 잊혀질 것만 같다는 생각이 자꾸 떠오른다. 열사, 민주화, 민주항쟁이란 말들은 해마다 기념일이 되면 주위에 나부끼지만, 그런 말들은 큰 감흥 없이 주고 받는 생일 축하 인사처럼 형식적인 언어로 남아버릴 것 같다. 민주화는 어느정도 이루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기념식이 열리는 장소 옆 학생식당 앞에서 한 학생이 친구 앞에서 짜증을 낸다. 조장이 조모임을 펑크 냈다나. 그래, 조모임은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문제라서 민감한 거다. 사람들이 예민해지는 상황은 각 사람의 수보다 다양하다. 예민한 데 집중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난 대학생 시절에 운동이라면 농구와 테니스만 했다. 깃발 들고 주먹 쥐고 구호를 외치는 운동하고는 친하지 않았다. 그런 내가 졸업한지 한참 지나서 이한열 영정과 행진을 하려는 건 민주주의를 이루고 보호하는 것이 지극히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문제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의 실현에 예민해졌다.
대학생 시절엔 졸업 이후를 구체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죽는 날까지의 내가 살아갈 한국 사회를 걱정하고 있다. 아직 이민을 생각하고 있지는 않으니까.
그래서 나는 이한열 영정을 따라 아스팔트 위를 걷는다. 후텁지근한 날이다. 매연에 아스팔트 특유의 냄새가 섞인다. 그래도 힘을 내서 걷는다. 국악패가 꽹가리며 장구, 북을 신나게 치고 있다. 같이 신을 내 행진한다.
중앙일보 앞이다. 사람들이 악을 쓰기 시작한다. 방음이 잘 되는 유리창일 테지만, 최선을 다한다. "중앙일보 폐간하라!" 폐간까지 할 필요 있겠냐만 계속 공공성을 포기한다면 이름 정도는 바꾸는 게 좋을 것 같다. <중앙사보>나 <삼성사보>, 혹은 <한나라 관보>는 어떨까.
한참을 걷는데 행인들이 격려한다. 웃으며 손을 흔든다. 급기야 윗옷을 벗고 흔드는 분도 나타났다. 거리에 나오지 않아도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고 있구나. 기분이 좋다. 힘이 난다.
시청 광장이 보이는 곳이다. 21년 전 6월 항쟁에 참여했던 이들이구나. 이들은 이한열을 또렷이 기억하겠지. 시청 광장 입구까지는 이한열의 이름이 살아 숨쉰다.
자리에 앉는다. 점점 어두워진다. 이제 이한열은 사라졌다. 주위의 누구도 이한열의 이름을 외치지 않는다.
대신, 죽어간 젊은이의 이름을 대신해서 촛불이 타오른다. 옛날 제갈공명은 사람의 머리 대신 만두를 제사상에 올렸다. 이제 청년들이 흘렸던 피 대신 촛농이 흐른다.
신분해방을 외쳤던 노비 만적. 동학농민군을 이끌었던 전봉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 만세 운동에 참여한 죄로 살해된 유관순. 그리고 이한열.
이름은 잊혀져도 정신은 남는다. 우리는 그 이름을 밟고 서 있기 때문이다.
(아직도 촛농이 피를 완전히 대신하고 있지는 못하고 있다.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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